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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마자파힛 제국(Majapahit Empire)은 13세기 후반부터 16세기까지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을 지배한 강력한 해상 제국이었습니다. 마자파힛 제국은 현재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일부 지역을 통치하며, 해상 교역과 강력한 군대로 동남아 지역을 장악했습니다. 오늘은 인도네시아 마자파힛 제국의 역사와 함께 하얌 우륵 왕 시대 펼쳤던 전성기 시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마자파힛 제국

마자파힛 제국의 초대 왕은 라덴 위자야(Raden Wijaya)입니다. 송 왕조와 몽골 제국의 해상 교역 중심지였던 자와섬(Java) 동쪽에서 교역을 통해 큰 부를 축적한 뒤 나라를 건국한 셈입니다. 라덴 위자야는 몽골 제국과힘을 합쳐 싱하사리 왕국(Singhasari Kingdom)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제국은 빠르게 세력을 확장했고, 그 후 몇 세대 동안 동남아시아의 주요 해상 국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강력한 해군을 보유해 동남아시아의 주요 해상 교역로를 장악하며 경제적 번영을 가져왔습니다.

하얌 우룩(Hayam Wuruk) 시대

1350년부터 1389년까지 나라를 통치한 하얌 우룩(Hayam Wuruk) 왕 시대, 제국은 전성기를 이룹니다. 하얌 우룩은 나라의 영토를 넓히고, 해상 교역을 활발히 진행해 경제적 번영을 이끌어 냈습니다. 재위 기간 동안 나라는 현재의 인도네시아 전역과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심지어는 동티모르까지 영향을 미치는 해상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해당 시기에는 유명한 재상 가자 마다(Gajah Mada)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가자 마다는 제국의 실질적인 통치자로서, 나라의 정치적 안정과 군사적 확장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팔라파 서약(Sumpah Palapa)"을 선언하여 동남아시아 전역을 마자파힛 제국의 영향력 아래 두겠다는 목표를 세우며 동남아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전성기를 유지합니다. 

경제적 번영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전략적인 위치에 자리잡았던 나라는 중국, 인도, 아라비아, 유럽 등과의 해상 무역으로 부를 축적했습니다. 자와섬은 향신료, 금, 은, 도자기 등의 주요 무역품을 생산하는 중심지로, 제국은 이러한 물품들을 수출하며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향신료가 교역의 핵심 물품이었습니다. 당시 향신료는 금만큼의 가치를 지녔습니다. 유럽과 중동의 상인들이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마자파힛 제국의 항구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러한 해상 무역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부를 축적했고, 재화를 바탕으로 강력한 해군을 구성하고 그 힘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해상 무역은 또한 문화적 교류를 함께 가져왔습니다.다양한 외국 문화와 종교를 받아들였고, 그 결과 마자파힛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문화와 종교

나라의 문화는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힌두교가 주요 종교로 자리잡았지만, 불교와 힌두교가 공존하며 독특한 종교적 융합을 이루었습니다. 마자파힛 시대에 건설된 사원들과 조각들은 두 종교의 융합을 잘 보여주며, 특히 힌두교의 신화와 불교의 교리가 결합된 예술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마자파힛 제국의 대표적인 유적인 "차디(Candi)"는 제국의 종교적, 정치적 권위를 상징했고, 중요한 종교 의식이 이루어졌던 장소입니다. 특히, 이스트 자바에 위치한 차디 브라후(Brahu)와 같은 사원은 예술의 종합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자파힛 제국은 문학적으로도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고대 자와어로 쓰인 문학작품들은, 후대 인도네시아 문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해당 작품들은 주로 왕과 신화적인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제국의 종교적 신념과 왕권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쇠퇴

마자파힛 제국은 15세기부터 점차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슬람 세력과 말라카 술탄국(Malacca Sultanate)의 등장은 나라에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말라카는 동남아시아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급성장함에 따라 마자파힛의 해상 무역 독점이 약화되었습니다. 또한, 제국 내부에서도 왕위 계승 문제로 인해 정치적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전성기를 보낸 하얌 우룩 왕이 사망한 후, 후계자들 간 분쟁이 제국의 정치적 안정을 위협했고, 이로 인해 중앙 권력이 약화되었습니다. 내부 분열과 외부 세력의 압박은 결국 마자파힛 제국의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1527년 마자파힛의 마지막 수도였던 트로울란(Trowulan)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 함락되면서 제국은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유산

마자파힛 제국은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유적들은 인도네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으며, 특히 트로울란 지역의 유적들은 제국의 찬란했던 역사를 보여줍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국가 이념인 "Bhineka Tunggal Ika(다양성 속의 통일)"는 마자파힛 제국 시대의 문구에서 유래한 것으로, 현재에도 나라의 이념적 상징으로도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동남아시아 해상 제국 중 가장 번영한 제국 중 하나였던 인도네시아 마자파힛 제국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마자파힛 제국의 유산과 전성기를 이끌었던 하얌 우룩 왕의 시대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